인도네시아 선교편지(2021년 3월)

인도네시아 선교편지(2021년 3월)

이필환 김영숙 선교사.png

인도네시아를 사랑하는 동역자님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청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코로나 상황으로 일상이 멈추어버린지 일년이 넘어갑니다.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서는 평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일년이 그냥 헛되이 지나가지는 않았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쉼의 시간일 뿐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는 기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주위의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의 믿음 또한 다시금 점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코로나 상황을 지나가면서 중산층의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 모두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 전에 압디엘 신학교 교회음악과를 졸업한 이필환목사의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스마랑시에서 음악 학원을 운영하며 꽤 주위에 이름이 알려져 학생들이 많았었는데, 지난 일 년 동안 코로나 발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아노, 키보드, 기타 등 악기를 판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동차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 기도요청을 해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개인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저희들과 함께 동역하고 있는 Gereja Isa Almasih (예수 그리스도교) 교단 하에 있는 여러 교회의 목회자의 삶 자체가 어려워져 호소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은 함께 동역하던 목사님이 올 초에 코로나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현지 교단(예수 그리스도 교단)의 차기 교단장으로 거론되던 신실한 주의 종으로서 아직 예순도 안된 나이라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고에 모두들 황망해 하며 놀랐습니다. 이필환목사가 참 아끼던 목사님이셨는데....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한 소식을 전합니다.

오산 한누리교회에서 마스크를 보내주셨습니다. 기도와 함께 따듯한 마음까지 전달해 주셔서 어려운 이 시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보통 일회용 마스크나 천으로 만든 마스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한국산 K-94 마스크는 저희와 함께 동역하고 있는 신도로 교회와 그 산하 개척 교회 분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압디엘 신학대학의 강의는 줌(Zoom)으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각자의 거주지에서 영상강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칼리만탄 섬에 거주하는 학생, 북부 자바섬에 거주하는 학생 등 거리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화상으로 서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현지 인터넷 상황이 안좋아서 원활한 강의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줌으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 학생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칼리만탄 섬의 쁘깐바루시에서 3 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살고 있는 학생이지요. 발병 초기에 신속한 의료처치가 필요한데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뿐 아니라 병원 시설이 열악해서 제대로 된 처치도 받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한국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감사하게도 그 학생은 마음을 다 잡고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과 함께 하나님께 그 학생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전번 선교편지에 Sekolah Wujud Ksih (사랑의 실천학교)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렸었는데, 올 초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막무가내로 권력을 행사하던 기도원 원장님이 초등학교의 모든 권한을 신도로 교회 예레미야 목사님께 이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곧 학교의 모든 부분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아직도 대면 수업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다시 동역하자고 연락이 왔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기도 중에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백신의 영향으로 확진자 증가세가 둔해지고 있습니다. 매일 만 오천 명의 확진자와 삼 사백명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지금은 오천 명 선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또한 적지 않은 확진자 수이지만 사람들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들도 대면 예배와 인터넷 생 중계 예배를 겸하여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교회에서의 설교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만 이필환 목사와 제가 백신을 맞는 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하루 속히 코로나 펜대믹 상황이 물러가도록 기도합니다.

이필환목사의 건강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구순이된 어머니께서 안동에 혼자 계시는데 못 봰지 오래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다 불효자라고 어떤 분이 말했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을 기다리며 인도네시아에서 인사 드립니다.

기도제목

1. 코로나 상황이 빨리 종식되어서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이 더 가중되지 않도록
2. 부모님의 건강을 위하여
3. 이필환선교사의 더 빠른 회복을 위하여
4. 김영숙선교사의 사역을 위하여
5. 동역자들과의 아름다운 사역을 위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이필환, 김영숙 드림

인도네시아에서 드림(2020년 7월)

이메일로 소식전해 주신 인도네시아 소식입니다.

류한국목사님과 베다니교회 성도님들께

안녕하세요.

비록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지만 너무 반가웠습니다.

어렵고 힘든시기, 아니 하나님께서 여실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는 시기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고난과 역경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다고하셨으니 믿음으로 말씀을 굳게 잡으며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올 2 월달부터 코로나의 여파로 모든 교회가 인테넷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이슬람의 모스크도 문을 닫았습니다).

직접 참여하는 예배가 아니라 집에서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라 적응이 잘되지 않고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인터넷 상황이 좋지 않아서 도시는 그런데로 인터넷으로 예배가 드려지지만, 시골에는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또한 헌금이 줄어들어서 시골 목사님들은 생계를 걱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학교도 문을 닫아서 인테넷으로 수업을 진행하고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목사님과 베다니 성도님들께서 기도로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조심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작년 말의 선교 편지지만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필환 김영숙드림

2016년 11월 선교지 소식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 (시편 150:6)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두손들고 맹세하며, 내평생에 사는 날동안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 감사예배


2014년11월 15일날 저희가 살고있는 지역인 스마랑에서 2시간 30분 떨어진 솔로도시(gereja GUPEI Gedung Grha Anugrah)에 있는 인도네시아교회에서 이필환 선교사의  감사예배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3개월전에 이 교회 목사님(Pdt. Christefanus)으로 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선교사의 건강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이필환 선교사가 사랑하며 동역한 현지 친구목사님으로 부터 감사 예배를 드리자는 연락이 오다니,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위한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어서 몇 번의 모임을 거친 후 11월 15일날 감사 찬양예배가 드려졌습니다. 멀리 자카르타(Gereja Rajawali)에서, 반둥(Gereja Lengkong besar, Gereja Maleer)에서, 스마랑(Gereja Pringgading, Gereja Dr. Cipto)에서, 솔로(Gereja GUPDI와 주위의 교회)에서 각 성가대원들과 압디엘 교회음악과를 졸업한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김점동 목사님과 박중창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의 변함이 없으신 사랑과 역사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이 땅 인도네시아로 이필환 선교사를 보내주셔서 교회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함께 사역한 이필환 선교사를 감사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병중에 있어서 함께 목소리로 찬양드릴 수는 없지만, 이 선교사의 영혼으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얼마나,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의 땅 인도네시아에서 주님의 자녀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가슴 벅차게 은혜로 다가 왔습니다.

이 선교사의 생명이 다할때까지 보내주신 이 땅에서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다짐했습니다.

# 이필환 목사의 쓰러짐


 2011년 7월 2일, 저의 일생에 가장 기가막힌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필환 선교사가 쓰러진 것입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이 선교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살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수술은 해보자며 수술실로 들어 갔습니다. 건강한 모습에 밝게 웃던 이선교사를 다시는 못 볼수도 있다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애통하는 심정으로 주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어찌하여 이런일이 일어난 것 입니까?’ 아직도 해야할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제 정말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신체부위도 아니고 뇌입니까? 죽은자도 살리시는 주님의 기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매일의 삶을 추스렸습니다. 4개월이 넘는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이선교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2개월동안의 코마상태와 2개월후 일반병동으로 옮겼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물 한모금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이선교사가 이렇게 변하다니,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이기를,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상황이 예전처럼 돌아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매일 밤 문병오는 사람들로 분주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 학생들 목사님들 그리고 한국 선교사님들... 이분들을 통해 주님은 저희가족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중보기도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회음악과를 졸업한 제자들이 이미 장성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흩어져 목회자로, 성가대 지희자로, 음악분야의 유력한 인사로 자기들의 역활을 다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중보기도로 돕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이선교사의 소식을들은 많은 분들이 놀라움과 함께 중보기도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들은분들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주님이 계시기에 애통해하며 울수있었고 불평하며 화내며 기도할수 있었고 또한 순간 순간 주시는 위로함으로 웃을수 있었습니다.

지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알아보고 이해하며 반가워 합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물리치료를 계속해서 받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신학교에 갑니다. 학생들을 만나고 교수들과 반갑게 악수합니다. 윌체어를 탄체 말입니다. 비록 아직은 언어의 장애로 인하여 말은 할수 없지만 가슴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계속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선교사가 본인의 목소리로 다시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배풀어주신 놀라운 기적들을 간증할수 있도록...

# 인도네시아로 파송 받다


1989년 이선교사가 장신대 신대원의 졸업을 앞두고, 그 당시 세계 선교부 위원장이셨던 서정운 교수님과 이광순교수님의 부르심으로 헌신하여 인도네시아 압디엘 신학교 교회음악과를 설치하기 위하여 파송을 받았습니다. 외동아들인 이 선교사의 고민도 있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의 첫발을 딛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아떠한 나라인지 정보도 부족한 가운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카르타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뜨거운 열대나라의 숨막히는 열기가 저희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몇계월의 언어 공부가 끝난후 스마랑에 위치한 압디엘 신학교로 의 교회음악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음악과는 여러가지 시설이 많이 필요한지라 시작단계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피아노도 있어야하고 음악에관한 책도 필요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음표악보가 아니라 숫자로된 악보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악보로는 간단한 음악표현은 할수 있지만 4부로된곡이나 예술가곡들을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선교사는 악보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학기에는 10명의 신입생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피아노도 구경해보지않은 시골 섬에서 온자들 이었습니다. 교수진이 부족한때라 거의 모든학생들을 혼자서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4년이지나 드디어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인도네시아 교회음악 지도자를 처음으로 세상에 보내게 된것입니다.  압디엘 교회음악과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시작한 학과이니 처음이라 말한것이 틀린것이 아닙니다. 졸업생중 한 학생을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장신대에 음악석사과정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첫 열매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 안식년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함


6년이 지나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교회음악공부는 학부에서 한것밖에는 없어서 좀더 공부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현지 사람들과 음악석사 과정을 마치면 속히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하고 미국에 도착하였습니다. 노스케롤라이나에 있는 남침례 신학교에서 교회음악 석사과정을 끝낸후, 선교지로 돌아가기위해 세계 선교부 총무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IMF를 맞이한 한국사정이 너무 어려워 파송을 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10년 가까운세월동안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떠나기전 현지인들과 약속했던 그것을 가슴에 묻어둔 체로...

# 선교지로 다시 돌아오다


2007년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선교지인 인도네시아로  돌아 왔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기다리는 압디엘 신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지만 교회음악과는 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학부의 재정비 작업과 함께 교회음악과 석사과정을 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교회음악 졸업생들이 계속적인 배움의 장이 절실히 필요한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 인도네시아 교수 한 사람을 장신대 교회음악과로 석사과정을 이수하기위해 보냈습니다. 참 감사하기는 그때도 주위의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습니다. 선교는 혼자서 하는것이아니라 동역자들과 연합하여 하나님나라를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한번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여러 교회들의 요청으로 음악 세미나와 설교 부탁을 받았습니다. 각 음악 경연대회에 심사도 많이 맡게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음악분야의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통하여 선교할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입니다.

영성 사역 : 이선교사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함에 고민하며 기도해 왔습니다. 아무리 선교사역이 커지고, 알려지고 열매를 맺는듯 해보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선교사는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두시간씩 혼자만의 묵상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본인이 하나님께 채움을 받고, 압디엘 신학생들에게 함께 기도하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매주 세번씩있는 학교 예배시간 중 하루를 영성훈련의 예배로 드려졌습니다.


교회를 돕는 사역 : 주위의 작은 교회들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이 이슬람이 강한 나라에서 어떻게하면 효율적으로 전도할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로 닥아가기로 했습니다. 시골교회에 동네아이들을 위한 영어반과 음악반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현지학생들과 같이 그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평북노회 여전도회원들의 헌금으로 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열정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목사님의 모습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는 점점 부흥되고 있습니다. 주위의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하여 유치원을 열었습니다. 어려운환경의 아이들을 위하여 시작한것입니다. 회비는 부모의 능력이 되는데로 돈을내고 다닐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교회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때 교회를 사용할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믿지않은 자들도 자연스럽게 교회안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하기 위함입니다.

 

 

# 현제 사역 현황 


이필환 선교사는 24시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평생에 바라던일,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선교사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주위의 현지인들이 기도하며 함께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압디엘에서 웃으며 학생들을 교수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직 학생들을 가르치지는 못하지만...


김영숙 선교사는 첫 텀사역때는 가정주부와  엄마로서의 역활이였습니다. 그때는 두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때라 엄마손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        두번째로 인도네시아로 돌아 왔을때 김선교사는 압디엘신학교의 학생으로 등록을 했습니다. 좀더 현지인들과 가까이 가기원했으며 인도네시아 기독교 교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습니다.  딸과 아들같은 신학생들과 한 반에서 열정을 나누며 깊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  기독교 교육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대하여 의견들을 나누었습니다. 이곳에는 기독교육에 관한 책과 자료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주일학교의 공과책 한권 만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자료들을 인도네시아 교회에서 서용할수 있도록 번역하는 일 을 시작하기 했습니다.

·         학부 기독교 교육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압디엘 신학교(Abdiel) 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수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졸업논문만을 남겨놓은 상황입니다. 현지에서 사역하고있는 목회자와 지도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인도네시아에서의 선교를 어떻게 감당할까 토의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날의 인도네시아의 선교의 지경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기대를 해봅니다.

·        스마랑에 있는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에서 요청이와서 일주일에 한 시간 반씩 한국을 알리는 방송을 하고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언어로 한국을 소개하는 일이라 쉬운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지않은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도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        스마랑도시에서 한 시간떨어진 곳에 신도로( Gereja Sindoro) 교회에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선생님들께 한국말을 가르치고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알리며 큰 꿈을 꿀 수있도록 길잡이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위해, 그 중의 반은 이슬람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시작된 학교입니다. 주일 학교에서 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있는 곳으로 앞으로 고등하교까지를 바라보며 사역하고있습니다.

·        작년 크리스마스에 인도네시아 교회에서 간증을 부탁 받았습니다. 이필환 선교사와 저희가정에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간증을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어려움과 기쁨과 주님안에서의 회복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이필환 선교사와 김영숙선교사를 인도네시아에 보내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여러 교회에서 설교 청도 많이들어오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같이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동안 함께사역해오던 현지교회와의 관계도 계속적으로 돈독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지 교인들의 한국 방문과 한국 선교단의 선교지 방문도 계획중에 있습니다. 남편인 이선교사의 그늘아래서 사역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내모심으로 이선교사가 회복할 동안 제가 더 많은 일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제목


1.          인도네시아의 복음화를 위하여

2.          이필환선교사의 빠른 회복을 위하여

3.          김영숙선교사의 사역을 위하여

4.          안정적인 후원을 위하여

계속적인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

이필환 김영숙선교사드림